타지에 있으면 날짜와 시간 감각이 둔해져 무슨 요일인지 헷갈리는 때가 많다.
포카라 Lake View Restaurant에서 저녁 음식을 시키고 나서 하루를 정리하며 날짜를 적는데 어제 수요일로 적었으니 오늘은 목요일.. 어라? 금요일에 카트만두로 돌아가야하는데 하루가 비네?
노트를 앞으로 넘겨보니 월요일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니까 지금은 수요일 밤이다. 왠지 하루를 늘린듯한 느낌.
이제 여행도 절반을 넘어 종반부로 가고 있다. 방콕에서 이틀밤. 카트만두에서 이틀밤. 이곳 포카라에서 이틀밤. 다시 카트만두에서 하루를 묵고,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새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으로 돌아간다.
7시에 출발하는 포카라행 Green Line 버스를 타기 위해 여섯시에 숙소에서 번쩍 눈을 뜨고 부랴부랴 준비를 한다. 열심히 준비를 다 하고나서 시계를 보니 8시 30분. 참고로 나는 외국 현지에서도 한국 시간을 그대로 유지한다. 멀리 있지만 마음은 가족, 친구들 그리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서. 아무튼 8시 15분을 네팔 현지 시간으로 계산하기 위해 3시간 15분을 빼고나니 5시 15분.
그렇다. 지금은 새벽 5시 15분이다. 버스 시간은 7시인데. ㅜ.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을 한다더니.. 그대로 쓰러져 다시 한시간을 더 잔다.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평소에는 뒤척이며 잠을 쉽게 못드는 내가 누우면 바로 잠이 든다. 개운하게 한시간을 더 자고 일어나 한시간 전에 했던 일을 똑같이 반복한다. 양치하고 샤워하고, 옷갈아입고, 가방 챙기고...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그린라인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카트만두의 아침풍경. 여느 도시와 다름 없이 시원한 새벽공기(라고는 하지만 햇볕은 정말 뜨겁다)와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흥미로운 것은 공터에서 태권도 수련을 하고 있는 한 젊은 무리들. 뿌듯함이 밀려온다.
<이른 아침 태권도로 심신을 단련하는 네팔 청년들 >
<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를 왕복하는 그린라인 버스. 정류장이 표시된 지도를 잘못 읽어서 참 오래 헤맸다. 다행히 현지분께서 손수 나를 이곳까지 안내해주셔서 버스를 놓치지 않고 무사히 이동 >
< 이동 중에 휴식을 위한 휴게소. 매점에서 음료와 스낵 종류를 판다. 나는 프링글스~ >
< 점심 식사. 날씨도 덥고 현지 커리가 입맛에 맞지 않아 많이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접시에 있는건 다 먹음) >
< 하늘이 참 맑고 푸르다. 하늘과 경치만 펼쳐보면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시골 풍경과 비슷하다. >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버스 이동시간은 총 7시간. 중간에 한시간 정도의 휴식 시간 겸 식사시간이 주어진다. (버스 요금에 식비가 포함되어 있음) 네팔식의 점심식사는 솔직히 입맛에 잘 맞지는 않는다. 인도와 더불어 커리를 주식으로 삼는 나라이기에 다양한 커리 음식이 부페식으로 나왔지만 내가 맛 보기엔 다 똑같은 커리 맛이라, 입맛에 맞는 사람이면 다 맛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 별로인 그런 조건이다.
버스 안에서 잠들만 하면 휴계소라고 쉬고, 다시 잠들만 하면 밥 먹으라고 깨우고.... 허허 ^^;
중앙선도 없는 왕복 2차선 도로에 어찌 그리 무질서하게 잘도 운전하는지, 작년도 그렇고 이번에도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접촉사고 한번 본적이 없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 눈에는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그네들 사이에서는 무언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면적인 질서가 존재하리라..
오후 3시, 드디어 포카라에 도착한다. 예약된 숙소에서 픽업을 하시는 분께서 나오셔서 큰 어려움 없이 포카라짱(Stay Well G.H)으로 이동 짐을 풀고 간단한 옷차림으로 갈아입는다.
드디어 안나푸르나가 보이는 포카라구나...
나오자마자 바로 숙소 앞 자전거 대여 아저씨에게 금요일 오후까지 자전거를 빌리고 승차.. 오오~~
나의 천군만마 그린 바이크!!!
자전거를 빌리고 나니 옆에 계시던 티벳 아주머니께서 슬쩍 말을 걸어 오신다. 당연히 악세서리 사라는 얘기신데, 심심해서 아줌마와 물건값 깎기 흥정을 한다.
이거이거 사고 저거저거 사고 그러면 싸게 해줄께.
아녜요 아녜요 저는 하나만 사고 싶어요.
하나만 사면 비싸, 세개 사면 두개 값으로 해줄테니까 세개 사.
아녜요 저는 가방이 작아서 세개는 안들어가요.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그럼 하나만 사~ 100루피!
에이.. 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30루피!!
(뭐 이런 녀석이.. 라는 표정을) 그럼 50루피!!
좋아요. 40루피! 땅 땅 땅.
40루피면 우리돈으로 500원이 조금 넘는다. 현지 생수가 5~10루피니까 결국 싸게 산 건 결코 아닌듯. ^^;
티벳 아줌마와 헤어지고 나서 자전거를 이끌고 막 돌아다닌다. 참고로 포카라는 로컬 버스가 전혀 없고, 주 이동수단은 택시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려서 시내를 돌아다닌다. 작고 아담한 휴양지 이기 때문에 자전거만 있어도 가고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도로에 차들도 별로 없어서 시원하게 질주할 수도 있다. (자전거로~)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다고 신나게 돌아다녔는지, 기운이 쭉 빠져 가까이 보이는 과일노점에서 커다랗고 노란 망고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20루피(300원정도). 아저씨에게 지금 너무너무 먹고 싶어요..라는 측은한 눈빛을 보내니 아저씨 즉석에서 내가 가르킨 거대한 망고를 손질해 접시에 놓아주신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열대의 맛 망고. 서울에서 3개에 만원정도 하는 망고가 이곳에서는 이삼백원이면 살 수 있는 흔한 과일이다.
망고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다시 솟는 기운을 주체할 수 없어 자전거 안장에 또 오른다.
< 포카라에서의 숙소인 STAY WELL G.H 혼자 여행하는 여행은 자유로워서 좋지만 넓은 방을 혼자 써야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
< 포카라 남쪽 지역에서 바라본 페와 호수 가운데 수풀은 섬인지 맞은편 동네인지는 잘 모르겠다. >
< 포카라에서 나의 두 발이 되어준 씽씽 자전거. 이곳에서는 벤츠 부럽지 않다. >
< 우와~ 소 뿔이 엄청나네. 이곳 소들은 길을 막 걸어다니고, 아무데서나 누워서 잠자고 그런다. 사람도 소도 모두 자유로운.. >
< 나도 같이 풍덩 하고 싶지만... 수영을 못한다. >
나에게는 지도란 녀석이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는 분명히 지도를 보고 간다고 가는데, 막상 가다가 멈춰서 지도를 꺼내면 이곳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엄청난 방향치...
그래도 자전거가 있으니 활동반경이 매우 넓어진다. 쉬엄쉬엄 한적함을 즐기며 시내 외곽 도로를 가고 있는데 버스, 자동차, 오토바이가 줄줄이 나를 추월한다. 힘들다는 표정으로 페달을 돌리는 나를 보고 힘내라고 손흔들어주는 사람들. ^^;
페와 호수 남쪽의 댐까지 내려가 주위를 방황하고 다시 북쪽의 캠핑장까지 올라온다. 분명히 지도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종단을 했는데 내가 어떤길로 왔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일 오전에 계곡과 동굴을 보러 가려면 다시 댐쪽으로 가야하는데 잘 찾을 수 있을까 몰라..
다시 시내로 돌아온 후 너무 날씨도 덥고, 자전거 타는데 지쳐서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 숙소가 어디였지? -.-
그래도 나이는 거져 먹은게 아니라 눈치껏 숙소에 무사히 귀환한다. 조금 헤매긴 했어도 이정도 헤맨거는 이전에 비하면 일취월장한거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의 망고 맛을 잊을 수 없어 사과 하나와 파란망고 셋, 노란망고 큰거 하나 해서 80루피에 사온다.
가게 아저씨한테 서비스로 바나나 하나만 달라고 애원했는데, 바나나 말고 망고를 하나 더 넣어준다. 한국에서는 망고 하나가 바나나 한다발보다 비싸요~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의사소통이 안되서... ^^;;
숙소 매니저 아저씨께 선물로 망고 두개를 드리고 방으로 올라와 샤워후 깨끗하게 씻어서 칼로 다듬는다. 다듬은 과일을 비닐 봉지에 다시 담아 바로 나가면 드넓게 펼쳐진 페와 호수의 잔잔한 물결소리와 시원한 저녁바람을 함께하며 벤치에 앉아 하나씩 꺼내 먹는다. 나만의 소박한 소풍.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어 자전거가 아닌 두발로 느긋하게 호수변을 산책한다. 노점에서 구워 파는 옥수수를 20루피에 사들고 쩝쩝 한알한알 떼먹으며 자유롭게 돌아다니니 시원한 바람과 빼어난 경치, 자연의 옥수수맛이 버무러져 행복감이 극대화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나 다른 대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일탈의 성취감도 한몫하고 있겠지.
구운 옥수수를 다 먹고, 강변 벤치에 앉아 준비해온 과일 다 먹고, 들고 다니는 물도 다 마셨는데, 저녁을 먹으러 근사한 식당을 찾고 있다. 대단한 식성!!!
< 페와 호수의 석양. 평화로움이란 게 바로 이것 >
< 느긋하게 물과 바람과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로움을 즐긴다. >
<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이래.. ㅜ.ㅜ >
< 해지고 난 저녁의 포카라 시내. 히말라야 트래킹을 위한 전초기지와 휴양을 동시에 수행하는 지역으로 산을 좋아하는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
< 나에게 구운 옥수수를 팔던 네팔 형제. 듬직한 형아와 깜찍한 동생 >
< 요것이 바로 네팔 전통 음악과 춤이라는 거란다. >
< 그렇게 많은 간식을 먹고도 저녁으로 주문한 스페셜 스테이크. 사이드 음식으로 나오는 과일이 푸짐해서 대 만족!! >
Lake View Restaurant라는 곳인데, 야외 무대에서 네팔 전통 공연을 보여준다. 소박한 공연 모습이 인위적이지 않아 더욱 좋다. 네팔과 더불어 티벳의 전통 공연도 함께 보여주는데, 나라를 잃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래도 여기저기서 전통 문화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모습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330루피(5000원정도)짜리 스페셜 스테이크를 주문해서 기다리는데, 이곳이 힌두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라는게 떠올랐다. 외국 여행객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된 소들에게 미안함과 경의를...
다음에는 스테이크 말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해야겠다.
내일은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사랑곶에서 일출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드디어 히말라야의 일출이구나...